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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한센병 환자 격리의 섬… 잊지 말아야 할 역사
2025년 4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69회는 ‘낙인 –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섬’이라는 제목으로 소록도에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을 다뤘습니다.
수천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격리되어 살아야 했던 이 작은 섬에서, 그동안 감춰져 왔던 수많은 아픔이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가장 충격에 빠뜨린 장면은 붉은 벽돌 건물 안에 보관된 122개의 유리병 속 태아와 인체 장기 표본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이 유리병 속 태아들은, 다름 아닌 한센병 환자 여성들이 강제 낙태를 당하며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지금까지 공식 기록에서도, 우리 사회의 기억에서도 사라진 채 잊혀져 왔습니다.
결혼조차 조건부, 생명은 허락되지 않았던 곳
소록도는 격리된 환자들에게조차 최소한의 존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공간이었습니다.
남성 환자가 결혼을 원할 경우, 반드시 ‘단종 수술’, 즉 강제적인 불임 수술을 받아야만 했으며, 여성은 임신이 확인되면 바로 낙태 수술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 규정은 질병이 완치된 음성 판정 환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소록도 병원 내부 문서에 따르면 “임신 가능한 자에 대해서는 단종 수술을 적극 장려하고, 매월 임신 여부를 조사하여 출산을 억제할 것”이라는 지침까지 존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병원 행정이 아닌, 국가 주도 하의 우생학적 통제였습니다.
사랑의 결실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강제로 잃어야 했던 이들의 슬픔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부정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생'이라는 절망적인 낙인이 환자들을 짓눌렀습니다.
“까마귀가 까마귀를 낳지, 까치를 낳을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

소록도에서 강제 낙태를 경험한 피해자들은, 수술 이후 태아를 유리병에 넣어 본보기로 보여주는 장면까지 겪어야 했다고 증언합니다.
“다시는 임신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이자 공포의 도구였습니다. 사회는 이들에게 “문둥이가 낳은 아이는 문둥이다”라는 식의 비하와 낙인을 퍼부었고, 이로 인해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곧 사회적 사망 선고와도 같았습니다.

이 같은 차별은 한센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1950년대 중반, 한센병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이 의학계에 공표되었으며, 전염력 또한 극히 낮다는 점은 국제적으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는 ‘외모의 변형’이라는 가시적인 증상을 이유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수탄장, 그리움도 포기해야 했던 부모와 자식

아이를 간신히 낳았다고 해도 그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록도 내 보육소에 보내진 아이들은 ‘미감아’, 즉 아직 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이라 불렸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매달 단 한 번 허락된 면회 시간. 아이들은 줄을 맞춰 보육소를 나섰고, 부모들은 수백 미터에 이르는 도로에 길게 줄지어 섰습니다.
하지만 2미터 간격 유지라는 원칙 아래, 부모와 자식은 손 한번 맞잡지 못한 채 눈빛만으로 그리움을 나눠야 했습니다.
이 길은 '수탄장(愁歎場)'이라 불렸고, 부모의 울음과 아이의 허기를 동시에 마주해야 했던 비극의 현장이자 통곡의 거리였습니다.

한 면회 당일, 음식을 들고 온 어머니는 자신을 찾는 아이의 손을 애써 붙잡지 못한 채 울음을 삼켜야 했고, 아이는 먹을 것을 허겁지겁 먹느라 부모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섬 밖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부모와의 생이별이 영원히 시작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반복된 침묵과 외면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이 같은 격리 정책과 인권 유린은, 해방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1958년 완치가 가능하다고 밝혀졌음에도, 소록도에서는 1992년까지도 단종 수술이 강제 시행되었습니다.
환자들은 여전히 해부 대상이었으며, 일부는 죽는 날조차 “일요일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일요일은 직원들이 쉬는 날이라 시신 해부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록도는 ‘병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사람이 병이 된 존재’로 취급된 땅이었습니다.
환자들은 자신을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손길이 처음 닿았을 때 “그 순간, 인권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오랜 차별과 침묵 끝에 찾아온 변호사들의 손길과 관심, 그리고 이를 통한 국가배상 판결은 단순한 승소가 아니라, 이들의 삶에 대한 첫 존중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의 소록도와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과제

오늘날 소록도는 차량으로도 진입이 가능한 열린 섬이 되었습니다. 전염성이 없는 상태로 완치된 주민들은 여전히 이 섬에 머물고 있으며, 그곳은 이제 그들에게 ‘고향’이자 삶의 터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공유하는 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잡는 책임 있는 자세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이번 ‘소록도’ 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사건의 기록을 넘어서, 한 인간의 삶과 인권이 어떻게 말살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진정, 그들을 이해하려 했는가?”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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